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문단 편집) == 방송 진행자 == * 메인 진행: 유철종, [[이지연(1947)|이지연]], [[김동건(방송인)|김동건]], [[신은경(1958)|신은경]], 이강자 * 유철종 박사: 1932년생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출신으로, 원래 기업HRD 교육 전문 강사이며, [[한국방송공사|KBS]] [[아나운서]]가 아니다.[* 방송인 [[이상벽]]처럼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활동한 이미지가 짙어서 아나운서로 오해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상벽 역시 잡지 기자와 연예평론가로 활동했다가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 교양 프로그램 MC를 오랫동안 맡으면서 아나운서로 오해받은 경우다.] 이지연 아나운서와 함께 상단에 언급된 아침방송 '스튜디오 830'을 진행하던 MC였기 때문에 발탁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이 전문 진행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산가족 방송 진행은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PD가 "평소대로 허허 웃고만 있어도 됩니다."라고 설득, 진행자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당시 아나운서들이 추구했던 '반듯함'보다는 현재의 'MC'에 가까운 푸근한 진행이 가능했고, 이 덕에 실제로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 출연진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인터뷰를 수월케 했다. 거기에 시청자들과 같이 울고 웃는 공감효과는 덤. 전문 진행자가 아니라서 가슴 아픈 장면이나 돌발 상황이 터지면 말을 잇지 못하고 '허허...'라든가 '아이구...' 같은 감탄사만 연발하는데 이것이 의외로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 [[이지연(1947)|이지연]] 아나운서: 1947년생 [[전라북도]] [[익산시]] 갈산동 출신으로 KBS 성우 [[김태연(성우)|김태연]] 씨의 아내이다. KBS에서 주로 활동하긴 했지만 KBS 소속 아나운서는 아니다. 1969년 이리기독교방송국(現 [[전북CBS]])에 입사하여 1969년부터 1979년까지 [[기독교방송]](CBS) 아나운서로 활동하였으며 1980년 [[언론통폐합]] 때 프리랜서를 선언하였다.[* 그래서 해당 방송 초기에 [[KBS전주방송총국|전주KBS]]나 [[KBS대구방송총국|대구KBS]]를 호출할 때 [[기독교대구방송|대구기독방송]]으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따라서 1983년 당시엔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 스튜디오 830을 진행하고 있었다. 현역 KBS 아나운서로 있는 이지연 아나운서와는 동명이인으로 애초에 연배부터가 현 이지연 아나운서의 아버지인 방송인 [[이상벽]] 씨와 동년배. 또한 이지연 아나운서 자신도 '''전쟁 중 오빠를 잃은 실제 이산가족'''이기도 하다. 전쟁 통에 헤어진 오빠는 이북에서 인민배우가 되었고, 2000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서울에서 만났다고 한다.[* 모든 이산가족 상봉이 그렇듯, 이지연 아나운서가 북한 측의 오빠를 상봉했을 때에도 감동적이고도 슬픈 에피소드가 존재했다. MBN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인 아궁이에서 이지연 아나운서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이지연 아나운서의 오빠는 외아들로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이후 북한에서 인민배우가 되고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이지연 아나운서를 상봉하게 된다. 상봉 초반에는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자들이 의레 그렇듯, 체제 선전과 찬양을 많이 했다고.. 그러다가 상봉 막바지에 상봉장 위의 [[스프링클러]]를 보고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때 이지연 아나운서가 스프링클러에 대해 설명하자,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외아들인데 행방불명돼서 부모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냐고 했다. 참고로 이지연은 상봉 당시의 오빠의 모습을 보고 마치 죽은 아버지가 살아온 것만 같다고 했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 진행 덕택에 국민포장에도 여러 번 서훈되었으며, KBS [[열린음악회]] 초기 MC를 비롯하여 이후 여러 방송에서 MC를 맡았다. 현재는 주로 노인대상 프로그램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베테랑 MC이며, KBS 제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과 [[NS홈쇼핑]] '이지연의 명품보감'에서 MC를 맡고 있다. 더불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자 프리랜서 아나운서 중에서 최고 연장자이다. * [[김동건(방송인)|김동건]] 아나운서: 1938년생으로, 본인부터가 '''고향이 [[황해도]] [[사리원시|사리원]]인 실향민'''이다. 그래서 황해도가 고향인 이산가족이 말을 못 이으면 엄청 디테일하게 물어보는 장면이 몇 번 등장하기도 한다. 해방 후 월남하여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동아방송]](DBS)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1968년 [[동양방송]](TBC)으로 이적했다. 그 후 1973년 KBS로 이적했으며[* 1980년 언론통폐합 때 이적한 경우가 아니다. 1973년 공사 출범 때 이적한 케이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명실공히 KBS의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주요 프로그램은 '11시에 만납시다'로 거의 10년 가까이 진행된 장수 프로그램이며, KBS [[가요무대]]는 중간에 7년 공백을 제외하면 1985년부터 무려 30여 년간 진행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2003년에 가요무대 MC직을 후배 전인석에게 넘겼으나, 2010년부터 다시 KBS [[가요무대]]를 진행 중. 그리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31년 동안 진행했다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20년 [[모던코리아]] 방송의 날 특집편 때 주연으로 등장하여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 대해 회고하기도 했다. * [[신은경(1958)|신은경]] 아나운서: 1958년생으로 1981년 KBS 8기 아나운서로 입사, 당시로서는 서구적인 마스크로 주목받아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최동호 기자와 함께 [[KBS 뉴스 9|KBS 9시 뉴스]] 평일 앵커를 맡던 중이었다. 1983년 이산가족 찾기 진행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시작하여 MBC의 [[백지연]]과 함께 1980년대 방송가의 여성 아나운서 지분을 양분하던 후덜덜한 경력의 소유자. 이후 1986년에 김광일과 [[박성범]]을 거치며 9시 뉴스를 진행했다가, 1987년부터 윤금자에게 평일 앵커직을 넘기고 1992년까지 주말 앵커에 전념했다. 1993년 유학길에 올랐다가 과거 KBS 9시 뉴스 동료 진행자였던 박성범과 1995년 결혼하여 기업인 겸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 이강자 아나운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1964년 DTV(훗날의 TBC) 1기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1971년 '세샘트리오' 멤버 전항과 결혼하여 마이크를 내려놓고 주부로 살다가 1983년부터 본 프로와 <스튜디오 830> 등지에서 프리랜서 리포터를 맡았다. 1985년 이후 파라과이로 이민갔다가 아르헨티나를 거쳐 미국에 정착하여 뉴욕 한인방송에서 TV 앵커로 활동해왔고, 2005년 모국에 잠깐 돌아오면서 고향 완도를 찾아오기도 했다.([[http://www.wan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774|완도신문 기사]]) * 서브 진행: 손석기, 황인우, 박용호, 원종배, [[정미홍]], 유애리, 김상준, 강성희. [[황인용]], [[송지헌]]. KBS 및 TBC, DBS 등 알려진 중견급 진행자는 거의 다 투입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 [[손석기]] 아나운서: 1952년생. 충북 영동 출신으로 1976년 동아방송(DBS)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언론 통폐합으로 KBS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영화학과]] 출신 아나운서이다.([[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출신) 이후 1991년 SBS 개국 당시 SBS 개국 멤버로 합류, SBS에서 스포츠 뉴스와 [[모닝와이드]]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동했다. 1998년에는 SBS 아나운서팀장과 2000년 SBS 아나운서팀 부국장을 역임했다. * 황인우 아나운서: 1981년 KBS 8기 아나운서로 입사. 신은경 아나운서와는 동기. 현재도 [[성신여대]]와 SBS 방송아카데미 교수직을 맡고 있어서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비교적 익숙한 얼굴일 것이다. 그 이쁘장한 아줌마 맞다. 손석기 황인우 두 사람의 얼굴은 이날 이후로 보기 힘들어지고 목소리만 나왔다. 이산가족방송 통틀어 제일 중노동(?)에 시달린 사람이 이 두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박용호(방송인)|박용호]] 아나운서: KBS [[박태원(아나운서)|박태원]] 아나운서의 아버지. 1990년대 KBS 제1라디오 저녁종합뉴스와 KBS 1TV 7시 뉴스네트워크, [[6시 내고향]] 등을 진행했고 1999년 KBS를 떠났다. 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고향인 인천 강화군 지역구에서 당선돼 정치판에도 잠시 몸담았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이 무효처리돼 짧은 국회의원 생활을 마쳤다. * [[원종배]] 아나운서: [[동양방송]] 출신 아나운서로 [[언론통폐합]] 이후 손석기 아나운서와 마찬가지로 KBS에서 활동했다. 1970년대생까진 KBS 2TV 교양 프로그램인 '사랑방중계'의 진행자로 잘 알려져 있고, 1980~90년대 초반생들에게는 [[장학퀴즈]] 진행자로 기억되는 얼굴이다. 장학퀴즈가 MBC에서 EBS로 넘어갈 즈음인데, 사실 그 이전에 KBS 2TV '중학생 퀴즈' 진행자를 맡기도 하고 1989년 신년특집 "만화영화대행진" 진행자를 맡는 등 7080년대 출생 세대에게 여러 모로 익숙한 아나운서다. * 유애리 아나운서 * [[정미홍]] 아나운서: '''2010년대 이후 [[친박]]/[[극우]] 활동으로 악명을 날린 그 사람 맞다.'''[* 다만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민주당(1991년)|민주당]] [[조순]] 캠프 대변인을 했던 걸 보면 당시에는 정치 성향이 과도하게 우편향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방송으로 커리어를 쌓은 후 이창호 아나운서와 함께 [[KBS 2TV]]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꿰찰 정도로 간판 아나운서로 성장했었다. * 김상준 아나운서 * 강성희 아나운서 * [[황인용]] 아나운서: 과거 [[동양방송]]의 간판 아나운서였으며[* [[동양방송]]이 언론 통폐합으로 폐국 될 때 TV/라디오 통틀어 가장 마지막 방송이었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서 최후의 콜로 유명한 아나운서였다.] [[언론통폐합]] 이후 KBS에서 잠시 활동했다. 해당 방송이 방영됐을 시기에도 KBS에서 활동했다. '안녕하세요 황인용·[[강부자]]/[[김미화]]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프리랜서로 전환하면서 주로 MBC에서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파주 헤이리에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며 내레이터로 간간이 활동하고 있다. * 배우 [[강부자]]: 황인용 아나운서와 함께 아침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도 같이 진행했다. (상기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진행) * [[송지헌]] 아나운서: 동아방송 출신으로, KBS 통폐합 후 아침 정보 프로그램 "생방송 전국은 지금" 등을 진행했고 이후에는 주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